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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브래드 피트(William Bradley Pitt)


초특급 외모에 수준급의 연기력까지 갖춘 섹시가이

 

                

브래드 피트를 한 마디로 수식하라면 잘 생겼다는 말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그것도 그냥 잘 생긴 것이 아니라 질투가 날만큼 아주 잘 생겼다. 화려한 금발머리에 매혹적인 미소로 데뷔 초부터 전세계 영화팬들, 특히 여성팬들을 매혹시킨 브래드 피트는 어느새 마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여전히 당대 최고의 미남이라는 타이틀을 내놓지 않은 채 맹활약을 펼치고있다. 그렇다고 브래드 피트가 얼굴만 팔아먹고 사는 꽃미남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브래드 피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날릴 줄 아는 금발의 멋쟁이지만 현재의 브래드 피트를 만든 것은 누구나 반하게 만드는 매혹적인 외모가 아니라 보는 이의 소름을 돋게 만들기도 하는 탁월한 연기력 때문이다. 한때 우리의 장동건이 고민했듯 배우로서의 진정한 가치인 연기력을 입증하는데 걸림돌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임에도 브래드 피트는 외모의 한계(?)를 극복하고 외면적 매력 이상의 내면 세계를 표출할 수 있는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연기만 잘 하거나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최상급의 외모에 수준급의 연기력까지 겸비한 초특급배우인 셈이다. 

             

 

l       궁핍했지만 행복했던 시절

 

브래드 피트는 화려한 학창 시절을 자랑하는 여느 헐리웃 스타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다.오클라호마의 쇼오니에서 태어나 미조리주의 스프링필드에서 성장했다. 트럭공장에 다니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는 독실한 침례교인으로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관을 바탕으로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삼남매를 엄격하게 길렀다. 어린 시절부터 매사에 적극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브래드 피트였지만 이런 부모의 영향 탓에 장기인 테니스로 혈기방장한 젊은 피(?)를 달래며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미조리 대학에 진학해 광고인이 되겠다며 저널리즘을 전공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지금 같은 세계적 배우로 성장하리라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꾹꾹 눌러둔 그의 마음 속 한 켠에 배우가 되겠다는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드러나고야 말았다. 2학점만 더 따면 졸업장을 받을 수 있는 시점에 브래드 피트는 돌연 그래픽을 공부하고 싶다는 핑계를 대고 LA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평생 고생을 모르고 자랐을 것처럼 보이는 브래드 피트는 LA에 진출한 이후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온갖 험한 일을 해야 했다. 그래픽 대신 연기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보수적인 부모로부터 일체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동차 세차, 스트립 쇼걸의 리무진 운전사, 냉장고 배달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LA의 조그만 아파트를 6명과 함께 나누어 쓰면서 써야 할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고 그 와중에 모은 돈으로 연기를 배웠다. 누가 말했던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노라고. 브래드 피트는 분명 이 시절 눈물 젖은 빵의 의미를 수없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 못지않게 성공한 지금, 그때의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브래드 피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밑바닥 시절을 전전했던 그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l       흘러간 시절들…<델마와 루이스> 이전의 출연작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 LA에서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꿈을 키우던 브래드 피트는 수많은 스타들이 무명 시절 그랬던 것처럼 <달라스>(Dallas), <그로잉 페인스>(Growing Pains), <헤드 오브 더 클래스>(Head of the Class) 등의 케이블 채널용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조금씩 경력을 쌓아갔다. 극장용 영화 데뷔작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 1989)에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십대 호러무비 <폭력교실>(Cutting Class, 1989)와 TV 영화 <어느 앵커맨의 고백>(The Image, 1990)을 거쳐 TV 영화 <투 영 투 다이>(Too Young To Die, 1990)에서 첫 주연을 맡은 것이 이 시기 가장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만난 10대 후반의 유망주 줄리엣 루이스는 침례교 집안에서 자란 모범생(?)답지 않게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브래드 피트가 데뷔 이후 처음 공식적으로 사귄 배우로 이후 3년 동안 만남을 이어갔다.

                

TV 영화의 주연에 이어 극장용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았던 작품은 짐 자무시 감독이 연출한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1984)의 촬영으로 널리 알려진 톰 디실로 감독의 데뷔작 <자니 수에드>(Jonny Suede, 1991). 이 영화에서 스프레이를 잔뜩 뿌린 괴상한 헤어스타일을 한 채 열연했던 브레드 피트는 연이어 <트랙>(Across The Tracks, 1991)이라는 영화에서도 주연을 맡았지만 정작 그의 존재를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라 할 수 있다.
 

<델마와 루이스>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의 리들리 스코트 감독과 당대 헐리웃 최고의 여배우들이었던 수잔 새런든과 지나 데이비스, 그리고 연기파 배우 하비 카이텔 등 막강 멤버들이 뭉쳐 만든 영화로 상영 당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화제작이었다.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에 잠깐 얼굴을 비추는 조연에 불과했지만 순진한 유부녀 루이스(지나 데이비스)와 화끈한 하룻밤을 보낸 후 두 유부녀의 도피자금 6천 달러를 몽땅 훔쳐가는 사기꾼역을 인상깊게 연기해낸 덕에 자신의 전성기를 열어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브래드 피트의 출연작들 중 <델마와 루이스> 외에 주목할 만한 영화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뒤늦게 공개된 <다크 사이드 오브 선>(The Dark Side Of The Sun, 1997)을 꼽을 수 있다. 브래드 피트의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1988년 유고의 아드리아에서 촬영을 시작해 이듬해 완료됐지만 유고 내전 때문에 마무리작업을 하지 못한 채 필름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사장될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 안젤로 아란젤로빅의 노력 덕분에 흩어져 있던 필름들이 뒤늦게 복원되어 편집 등 후반기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연이 많은 작품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던 닉은 태양에 노출되면 생명이 위태롭게 되는 선천적 피부질환자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후 남들처럼 태양 아래서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목숨을 포기하는 비극의 주인공이다. 전신을 둘러싼 가죽옷을 벗고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목숨을 건 사랑을 나누는 닉의 모습을 통해 브래드 피트는 <흐르는 강물처럼>과 <가을의 전설> 등 자신의 출세작들에서 보여준 모습 못지않게 매력적인 젊은 날의 모습을 선보였다. 10년 전에 만들어졌다 뒤늦게 개봉된 이 영화를 못 보신 분들이라면 비디오나 DVD로 구해보시기 바란다. 데뷔 초기의 풋풋했던 브래드 피트의 매력을 흠뻑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l       ‘전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영화들

 

             

<델마와 루이스> 이후 브래드 피트는 <흐르는 강물처럼>과 <가을의 전설>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당시 절대지존이었던 톰 크루즈에 버금가는 섹시 가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먼저 몬태나 주의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로버트 레드포드의 3번째 연출작 <흐르는 강물처럼>. 플라잉 낚시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인생의 의미로 여기는 멕클린 삼부자의 삶을 프랑스 출신 촬영감독 필립 루슬로(이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가 잡아낸 아름다운 영상에 담아 잔잔하게 그려낸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자유분방한 둘째 아들 폴역을 맡아 마치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며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

 

우수에 가득한 표정으로 순수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표출해낸 브래드 피트의 초창기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는 1990년 사망한 전설적인 장로교 목사 노먼 멕클린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목사로서 기독교 교리서를 편찬했을 뿐 아니라 사냥과 낚시에도 조예가 깊어 이 방면의 고전이라 불릴 정도의 안내서를 출간하기도 했던 노먼 멕클린은 영화 시나리오의 초고가 완성되기 며칠 전 세상을 떠났지만 영화 속 멕클라인 목사의 모습으로 영화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자리잡을 수 있었다.

 

브레드 피트는 자신의 또다른 출세작 <가을의 전설>에 출연하기 전 1992년도 선댄스 영화제 출품작으로 제65회 아카데미 영화제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콘텍트>(Contact, 1992)를 비롯해 에니메이션과 실사영화를 합성해 만들어진 <쿨 월드>(Cool World, 1992),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주연했던 <트루 로멘스>(True Romance, 1993), 그리고 도미닉 세나 감독이 만든 로드 무비 <캘리포니아>(Kalifonia, 1993) 등에 잇달아 출연했다. 이 시기 출연작들 중 가장 볼만한 영화는 훗날 <식스티 세컨즈>(Gone In 60 Seconds, 2000), <스워드 피쉬>(Sword Fish, 2001)로 유명해진 도미닉 세나 감독의 <캘리포니아>를 꼽을 수 있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영상 때문에 미국 영화수출협회로부터 NC-17 등급 판정을 받는 등 화제를 뿌리기도 했던 이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연쇄 살인범 얼리 그레이스의 난폭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연기해내며 뛰어난 연기력을 과시했다. 마치 화려한 외모를 밑천 삼아 어설프게 배우 흉내나 내는 꽃미남이 아니라 깊은 내면의 갈등과 아픔까지 표현할 수 있는 진정한 연기파 배우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데니스 호퍼, 게리 올드만, 사무엘 잭슨, 발 킬머 등 쟁쟁한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 또는 단역으로 대거 출연했던 토니 스캇 감독의 <트루 로멘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잠깐 등장하는 단역에 불과했지만 자세히 보지 않고는 브래드 피트인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마약중독자의 모습을 통해 탄탄한 연기력의 소유자임을 보여줬다.


     

그리고 <가을의 전설>(legend Of The Fall, 1994). 브래드 피트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유명도에 비해 뭔가 허전함이 남는 작품이다. <커리지 언더 파이어>(Courage Under Fire, 1996), <라스트 사무라이>(Last Samurai, 2003) 등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산업혁명과 1차 대전으로 인해 급격히 변화하는 미국의 서부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갔던 루드로우 일가의 흥망성쇠보다는 주인공 트리스탄의 사랑과 방황에 초점을 맞춤으로 브래드 피트라는 배우의 일인극으로 전락(?)시켰다. 누군가 말했듯이 브래드 피트의 매력만이 스크린을 가득 메웠던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셈이다. 브래드 피트는 자신의 출연작들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크리스탄역 덕분에 피플지가 선정한 "살아있는 가장 섹시한 남자"로 뽑히는 등 전세계 여성들의 연인으로 우뚝 설 수 있었지만 한 편의 대서사시가 될 수도 있었던 영화는 개인의 자아찾기 정도에 머물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 영화다. 
      

l       성공에 안주하기 보다 배우로서의 존재가치가 더 중요

 

         

주연급 배우가 된 후에는 조연이나 단역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은 반면 브래드 피트는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고정된 이미지나 역할의 비중 따위에 얽메이지 않고 다채로운 배역에 도전하며 자신이 연기폭을 넓혀왔다. <가을의 전설> 이후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영화들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만으로 이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닐 조단 감독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Interview With The Vampires, 1994)를 비롯해 <세븐>(Se7en, 1995), <12 몽키즈>(Twelve Monkeys, 1995), <슬리퍼스>(Sleepers, 1996), <데블스 오운>(The Devil’s Own, 1997),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 <스내치>(Snatch, 2000) 등에서 브래드 피트가 맡았던 다양한 역할들은 아무나 쉽게 도전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특이한 것들이었다. 물론 이 와중에 <티벳에서의 7년>(7 Years In Tibet, 1997)이나 <죠 블랙의 사랑>(Meet Joe Black, 1998) 같이 평범한 영화에서 평범한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 시기 브래드 피트는 절정에 오른 연기력을 바탕으로 개성이 넘치는 배역들을 수준급으로 소화해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특히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 공동주연 톰 크루즈와 벌였던 팽팽한 연기 대결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브래드 피트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톰 크루즈와 막상막하의(어쩌면 한 수 위라 할 수도 있는) 대결을 벌임으로 영화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반면 톰 크루즈의 입장에서는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차인표가 주연이었던 <별은 내 가슴에>를 통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안재욱이 더 부각됐던 경우처럼 말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 영화 이후 톰 크루즈는 브래드 피트와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다. 아마 자신의 보조역이라 여겼던 브래드 피트가 예상 외로 선전하며 절대지존이었던 자신의 아성에 도전하는 위세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음산하지만 섹시했던 뱀파이어에 이어 자신의 아내까지 노리는 연쇄살인마
(케빈 스페이시)와 일촉즉발의 대결을 펼치는 고독한 형사역을 열연했던 <세븐>은 반듯한 외모로 누구 못지않게 바른 생활 사나이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무미건조한 모범생보다는 뭔가 어긋나 삐딱하게까지 보이는 터프가이나 비정상적이고 퇴폐적인 삶을 살아가는 듯한 인물들을 실감나게 연기할 줄 아는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영화다. <캘리포니아>에서의 살인마나 <트루 로멘스>의 마약중독자에 이어 <12 몽키즈>에서 선보였던 정신병자 제프리 고인즈역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라는 평을 듣는 외모를 가지고 정신병동에서 비참하게 뒹구는 정신병자의 모습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관록의 배우 브루스 윌리스보다 더 깊이 있는 내면세계를 표출해낸 브래드 피트의 연기내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연기의 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로버트 드 니로와 더스틴 호프만, 그리고 케빈 베이컨까지 당대의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했던 <슬리퍼스>도 빼놓을 수 없다. 배리 레빈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던 이 영화에서 브레드 피트는 어린 시절 자신과 친구들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간수에 대한 복수를 주도하는 마이클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네츄럴>(The Natural, 1984),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 1987), <레인맨>(Rain Man, 1988), <벅시>(Bugsy, 1991), <토이즈>(Toys, 1992), <폭로>(Disclosure, 1994), <웩 더 독>(Wag The Dog, 1994), <스피어>(Sphere, 1998) 등 수많은 화제작들을 연출했던 배리 레빈슨 감독의 명성에 비해 긴박한 맛은 떨어지지만 브래드 피트를 비롯한 출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들이 일품이었던 영화다. 

       

 

알란 J. 파큘라 감독의 <데블스 오운>은 약간 실망스러운 영화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 1982)을 비롯해 <의혹>(Presumed Innocent, 1990),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Consenting Adults, 1992), <펠리칸 브리프>(The Pelican Brief, 1993) 등의 수작들을 연출했던 파큘라 감독의 유작이기도 한 <데블스 오운>은 촬영 도중 시나리오가 일곱번 정도 바뀌는 바람에 브래드 피트가 도중하차할 생각까지 했을 만큼 원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마 해리슨 포드와 브래드 피트라는 거물급 배우 중 어느 쪽을 부각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했던 제작사의 고충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쨋거나 6천 3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배상료 요구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 출연은 했지만 흥이 날리는 없는 노릇. 그럼에도 강렬한 신념으로 무장한 북아일랜드 소속 테러리스트 프랑크의 단호한 모습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의 모습은 여전히 인상적이었으며 함께 출연했던 역전의 노장 해리슨 포드의 안정된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다만 물과 기름이 겉돌 듯 융화되지 못한 두 배우의 부조화 등으로 인해 영화는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료는 좋았지만 요리 방식과 기술이 어긋난 셈었다고나 할까.

 

l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 빛났던 영화들; <파이트 클럽>, <스내치>, & <멕시칸>

       
<데블스 오운>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시기 물이 올랐던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두 편의 영화들을 살펴보자. 먼저 리들리 스콧과 제임스 카메론 등의 명장에 이어 불과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에일리언>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에일리언 3>(Alien 3, 1992)로 데뷔했던 데이빗 핀쳐 감독의 세번째 작품이기도 한 <파이트 클럽>(1999).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일대 일 싸움을 선동하는 거리의 싸움꾼 테일러역을 맡아 얄미울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에드워드 노튼과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는 남성 파시즘의 선전 영화냐 아니면 문명비평적인 영화냐 하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남성적인 힘을 확인함으로 무미건조한 도시생활에 활력을 얻으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파이트 클럽>이 사제폭탄을 제조해 도시문명의 파괴를 선동하는 테러단체로 변모하는 모습(결국 도시 하나를 파괴하기까지 한다)을 보이는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단면만으로 영화의 성격을 평가하기에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비대중적이기조차 한 영화지만 브래드 피트의 연기력과 매력을 발견하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공동주연이었던 에드워드 노튼의 뛰어난 연기와 함께 <에일리언 3>와 이미 스릴러물의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는 <세븐> 등으로 화제를 모았던 CF 감독 출신 데이빗 핀쳐의 탁월한 연출력까지 확인할 수 있어 적극 추천할 만하다.

 

<티벳에서의 7년>이나 <죠 블랙의 사랑>같은 맥빠진 영화보다는 이렇게 역동적이고 거칠기까지 한 영화들에서 브래드 피트의 매력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그 자신도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는지 이번에는 <록 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L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 1998)라는 긴 제목의 데뷔작으로 일약 영국의 쿠렌틴 타렌티노로 떠오른 가이리치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스내치>(Snatch, 2000)에 출연한다. 이 당시의 일화를 보면 <록 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를 본 브래드 피트가 영국으로 날아가 가이 리치에게 무턱대고 차기작에 출연시켜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가이 리치는 브래드 피트의 몸값이 너무 비싸 안된다고 거절했지만 돈보다는 좋은 영화에 출연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브래드 피트의 열정에 밀려 결국 그를 출연시키기로 했다.

           


<스내치>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준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정말 괜찮은 것이었다. <스내치>에서 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장면들은 영화 전체의 1/3에 해당하는 30분 정도 분량에 불과하지만 베니치오 델 토로(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유주얼 서스펙트>, <더 팬>, <트래픽>, <21그램> 등에서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등 수많은 개성파 배우들과 함께 코믹한 억양을 구사하는 아일랜드 출신 집시 복서 미키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그의 연기는 단연 수준급이었다는데 이견이 없을 정도다. 86캐럿 짜리 다이먼드를 둘러싼 갱들과의 암투에 도박 권투까지 얽혀 복잡하게 전개되는 <스내치>는 가리 리치 감독 특유의 연출과 편집에 힘입어 전작 <록 스탁 앤 스모킹 배럴스>를 능가하는 수작으로도 유명하다.

 

출연료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영화를 출연하겠다는 브래드 피트의 고집은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멕시칸>(The Mexican, 2001)에서도 계속됐다. 총제작비 4천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멕시칸>에는 당대 최고의 섹시 가이 브래드 피트 뿐 아니라 <에린 브로코브스키>(Erin Brockovich, 2000)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줄리아 로버츠까지 함께 출연했으니 평소 두 배우들의 몸값을 생각하면 얼마나 개런티가 저렴했을지 상상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작품의 질과 흥행성적이 제작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듯 개봉 당시 성적이 1위를 기록하는 등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감독과 출연 배우들의 주가를 높여줬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는 <런어웨이 브라이드>와 <에린 브로코브스키>에 이어 <멕시칸>까지 출연작 3편의 개봉성적이 연속 1위를 함으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마우스 헌트>(Mouse Hunt, 1997)로 데뷔했던 CF 감독 출신 고어 버빈스키 또한 두번째 작품이었던 <멕시칸> 이후 일본 작가 스즈키 코지의 베스트 셀러를 헐리웃에서 리메이크한 <링>(The Ring, 2002)으로 다시 한번 다재다능한 면모를 과시했다. 
      

브래드 피트의 경우 역시 <파이트 클럽>과 <스내치>에 이어 개성있는 연기로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멕시칸>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했던 제리 웰바크는 바보 같은 실수로 갱단에 발목을 잡힌 채 5년 동안 하수인으로 살아가다 멕시코로 가서 전설의 총 ‘멕시칸’을 찾아오라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사만다(줄리아 로버츠)와 결별하면서도 어리숙하게 계속 실수를 저지르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의 타일러 더든이나 <스내치>의 미키 오넬에 비해서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두 편의 전작들에서 맡았던 무거운 역할보다는 훨씬 편안하게 브래드 피트의 매력을 감상할 수 있다.

 

l 블록버스터의 영웅으로 돌아온 브래드 피트, 이제 헐리웃 절대지존을 꿈꾸나      


    
 

<멕시칸>에서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맺었던 인연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과 <오션스 트웰브>(Ocean’s Twelve, 2004)에도 함께 출연하며 계속 이어졌다. 브래드 피트와 줄리아 로버츠를 비롯해 지난 호에 소개했던 맷 데이먼과 조지 클루니, 앤디 가르시아, 캐서린 제타 존스 등 헐리웃의 간판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던 이 영화들은 출연배우들이 워낙 많아 그동안 여러 번 소개했기 때문에 따로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다. 다만 줄리아 로버츠가 자신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던 <에린 브로코브스키>의 소더버그 감독과 맺은 인연을 잊지않고 조연과 단역 수준의 배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과 브래드 피트가 주인공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오른팔이자 카드의 귀재 러스티 라이언역을 열연했다는 사실 정도만 언급하도록 한다.

     

브래드 피트는 <오션스 일레븐> 이후 로버트 레드포드와 함께 토니 스캇 감독의 <스파이 게임>(Spy Game, 2001)에 출연했다. 60대 후반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거장 로버트 레드포드와는 이미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감독과 배우로 인연을 맺은 바 있지만 함께 연기를 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마치 젊은 시절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는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며 정상급 배우로 가는 문을 두드릴 수 있었던 브래드 피트는 <스파이 게임>에서 베테랑 CIA 요원 나단 뮈어(로버트 레드포드)에게 발탁되어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다 중국에서 체포되어 24시간 내에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한 비숍역을 맡아 로버트 레드포드와 부자지간보다 더 긴밀한 사제지간의 끈끈한 모습을 보여줬다.


           

<스파이 게임>에 이어 <오션 일레븐>에서 한 팀을 이뤘던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인 <컨페션>(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 2002)에 우정출연하기도 했던 브래드 피트는 고대 희랍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서사극 <트로이>(Troy, 2004)에서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역을 맡아 현대극에서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다시 한번 자신의 진가를 발휘했다.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현대적 시각으로 각색해 영화화한 <트로이>는 왕년에 <특전 유보트>(The Boat/Das Boot, 1981)라는 걸작으로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했던 독일 출신 볼프강 페터젠을 비롯해 <헐크>(The Hulk, 2003)의 에릭 바나, <반지의 대왕; 반지원정대>(The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2001)에서 레골라스역으로 데뷔한 이후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올랜도 블룸, <네셔널 트레져>(National Treasure, 2004)의 다이엔 크루거 신세대 배우들과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 1965)의 여주인공 줄리 크리스티, <엑스맨2>(X2, 2003),  <본 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 2002), <본 슈프리머시> (The Bourne Supremacy, 2004) 등에서 묵직한 연기를 보여줬던 브라이언 콕스 등 노장급 배우들이 함 팀을 이뤄 만들어진 총제작비 2억 달러가 사용된 대작이다.


      

워낙 방대한 스케일의 대서사시를 한 편의 영화로 표현하는 작업이 간단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완성작을 둘러싸고 호평과 악평이 나눠진 가운데 시대극에는 처음 출연했던 브래드 피트의 연기는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과장된 연기를 요구하는 역할을 통해서도 브래드 피트는 소름이 돋을만한 연기를 펼쳤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극찬처럼 비록 졸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들만한 수작도 아니라는 <트로이>가 그래도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 역시 영화 속 아킬레스의 고군분투처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브래드 피트 때문일 것이다(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 의해 사촌이 죽자 분노하는 아킬레스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지 않은가).

 

사실 브래드 피트는 <오션스 일레븐> 이후 친분이 두터운 영화인들과 작업을 하던 중 신예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세번째 작품 <파운틴>(The Fountain)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감독과의 불화와 예상보다 많은 제작비를 지출한 워너 브라더스의 출연료 삭감 요구에 심기가 상해 갑작스럽게 <트로이>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보다 나은 선택을 한 셈이다. 그리고 두터운 갑옷을 벗어던진 현대판 아킬레스는 올 여름 극장가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더그 리만 감독의 최신작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에서 방탄복과 권총으로 무장한 킬러로 변신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더그 리만 감독은 독립영화계에서 강렬하고 독창적인 스타일로 명성을 떨치다 처음 연출한 메이저급 영화 <본 아이덴티티>의 대성공에 이어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라 졸리라는 환상적인 커플이 초메가급 섹시미를 발산한 이 영화 또한 빅히트하면서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겸비한 명장이다.

    

 

<툼 레이더>(Lara Croft: Tomb Raider, 2001)의 여전사 안젤리라 졸리가 여주인공역을 맡은 이 영화의 줄거리는 첫눈에 반해 결혼한 후 5년(또는 6년) 동안 평범한 부부생활을 유지하지만 사실은 경쟁 조직의 일급 킬러인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고 서로를 죽이라는 지령 때문에 충돌하던 중 다시 이전의 열정적인 사랑을 회복한다는 코믹한 내용이다. 하지만 원래 미세스 스미스 역을 맡기로 했던 여배우는 톰 크루즈의 전처 니콜 키드만이었다. 그런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Dogville, 2003), 프랭크 오즈 감독의 <스텝포드 와이프>(The Stepford Wives, 2004), 조나단 글레저 감독의 <탄생>(Birth, 2004) 등에 연속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던 니콜 키드먼의 일정 때문에 이 배역은 케서린 제타 존스에게 돌아갈 뻔하다가 결국 안젤리나 졸리가 맡게 된 것이다. 영화도 성공했지만 이 영화 덕분에 주연 커플의 사랑도 결실을 맺었으니 두 사람은 애당초 여주인공으로 낙점됐던 니콜 키드만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그동안 브래드 피트는 드라마와 액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는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도 확실하게 구축해왔다. 헐리웃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도 다양하다. 그만큼 브래드 피트의 새로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침체됐던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상징하는 명작 <무간도>(Internal Affairs, 2002)를 헐리웃에서 리메이크한 <인터널 어페어>(Infernal Affairs)다. <무간도>의 양조위와 유덕화가 맡았던 진영인과 유건명역을 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와 나눠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브래드 피트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헐리웃에서 만들어진 리메이크치고 제대로 된 영화가 없다지만 브래드 피트가 진영인이나 유건명의 역할을 연기하는 모습(개인적으로 유건명역을 맡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은 정말 멋질 것이다. <21그램>(21 Gram)의 명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감독이 연출할 <바벨>(Babel)도 마찬가지로 기대가 된다. 이외에 실존인물을 다룬 서부극에도 출연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들리는 만큼 이전의 출연작들 못지않게 다양하고 색다른 브래드 피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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